| 초안 누가 천사야? (가제) 등장인물: 1) 날개 달린 강아지 2) 천사(여신) 3) 아이들 3-1) 책 읽는 소녀 3-2) 피아노 치는 소녀 3-3)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 3-4) 산사로 피크닉 간 소녀 3-5) 문병 가는 소년 3-6) 기도하는 쌍둥이 스토리: 첫 번째 소녀는 싱그러운 초여름을 좋아합니다.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산에 놀러 왔습니다. 오래된 절 냄새가 소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찰칵찰칵. 사진 찍는 순간도 너무나 즐겁습니다. 두 번째 소녀는 달콤한 독서에 빠져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신들의 이야기는 보고보고 또 봐도 흥미진진합니다. '정말 신이 있는 걸까? 저 위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걸까?' 앗! 바로 그 순간, 소녀의 머리 위로 강아지가 날아갑니다. 강아지가 날아가고 있어요. 날개 달린 강아지는 세 번째 소녀의 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소녀는 왠지 우울해 보였습니다. '더 이상 피아노 연습은 하고 싶지 않아.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어.' 강아지는 소녀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짠! 날개 달린 강아지가 소녀의 눈 앞에서 재롱을 부립니다. 엉덩이를 씰룩씰룩, 콧구멍을 벌렁벌렁. 네 번째 소녀는 아기 고양이와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회사, 엄마는 시장, 할머니는 낮잠. 그래서 소녀는 조금 지루합니다. 와! 그 때 창 밖을 스쳐 지나간 것은 분명 날개 달린 강아지겠지요? '내 고양이도 날개가 생기면 좋을 텐데! 그럼 조금도 심심하지 않을 거야!' 한참을 날아다닌 강아지는 잠시 쉬고 싶어 졌습니다. '응? 머지?' 다섯 번째 소년은 깜짝 놀랐습니다.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려는 거야? 그것도 재미있겠는걸. 그런데 어쩌지. 난 지금 짝꿍 문병 가는 중이거든!" 나는 새가 아닌데. 날개 달린 강아지는 다시 새처럼 날아올랐습니다. 여섯 번째 소녀와 일곱 번째 소녀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두 소녀는 얼굴도 똑같고 키도 똑같고 머리 모양도 똑같습니다. 여섯 번째 소녀가 아프면 일곱 번째 소녀도 아파집니다. 일곱 번째 소녀가 병이 나으면 여섯 번째 소녀도 병이 낫습니다. '우리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 '우리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 어느덧 하루 해가 저물었습니다. 날개 달린 강아지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천사들 구경은 실컷 하고 왔니?" 날개 달린 강아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첫 번째 소녀의 일기) 사진 붙여놓고. 멘트. 천사. |
'Fairy Tale'에 해당되는 글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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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열 세 살 적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나는 열 세 살에 어떤 경험을 통해 이미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친 기억이 있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 약간의 과장을 덧대어 충분히 굉장한 스토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으므로, 그냥 간단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겠다. 그 전까지는, 난 굉장히 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아이였다. 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대단히 소심하고 집요하다는 것인데, 나는 그 특징을 빼면 남다를 곳이 없는 아이일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모두들 알다시피, 그런 증상이 심각한 아이를 - 그것도 여자아이를 -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 경험상으로는, 백 퍼센트 없다. 시대를 불문하고 긴 언어 사용자들은 호감도가 낮다. 역시 짧은 언어 사용자의 유쾌함과 간결함이 더욱 환영을 받기 쉽고, 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가가기 힘든 류의 사람으로 인식 되기 십상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때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이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므로, 나의 언어가 길고 지루하다는 사실에 깊이 상처받기도 했었다. 바로 그 상처가 지독하게 깊은 골을 파고 썩어 들어갔던 것이 열 세 살 적 일이다. 열 세 살의 나는, 참으로 고독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현재 스물 아홉 살인 나는 짧은 언어 사용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짧은 명상 호흡법을 통해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길고 지루한 기억들의 절반 정도를 내 인생에서 소멸해 버린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짧은 언어에 능통해 버린 것은 아니다. 스승님도 말씀하시길, 태생이 긴 호흡을 타고난 자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에라도 기대어 사는 편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것이 내가 날마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이다. 어쨌거나 당시에 왜 내 곁에 부모님이 안 계셨는지, 왜 이름 모를 타인들과 동거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그냥 넘어가겠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고, 날마다 슬펐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내 주변에는 항상 타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는 상관 없었다. 그나마 타인의 존재로 인해 간간히 언어의 마침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들의 활약은 악의 없는 명령과 깊이 없는 사교에 기인했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담임 선생님이라던가, 단말마적 짧은 음절만 반복하는 동급생들과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유희란, 바로, 마침표 찍기 놀이였다. 만약 그들마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세상에서 가장 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것이 긴 호흡의 달인으로서 충분히 존경 받을 만한 업적이라고 떠들어댈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인물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개인적으로, 열 세 살은 굉장히 중요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경험은 영혼의 본질을 잡아먹는다. 나는 열 세 살의 어느 날 버스를 탔고, 그 때 그러한 종류의 경험을 했다. 그 날은 운동회가 끝난 뒤라 있는 대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얀 체육복은 흙먼지로 얼룩졌고, 운동화 속에 작은 돌멩이들이 발바닥을 콕콕 찔러댔다. 항상 단정하게 내려놓던 앞머리가 땀 범벅이 되어 흐트러져있고, 손으로 가릴 새도 없이 입을 쩍 벌리고는 연실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버스에 오르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열 세 살의 나는, 제발 버스에 앉을 자리가 있기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물론 자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한 선물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버스 안에는 딱 한 자리만을 남겨두고 모든 자리에 내가 앉아있었다. 손톱 끝에 흙을 파내고 있는 아이, 손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정리하는 아이, 신발 한 짝을 벗어 잔돌을 털어내고 있는 아이, 유행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아이,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졸고 있는 아이 등 정확히 몇 명인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였다. 버스에 오른 나는 당연히 놀랐고, 운전기사를 쳐다보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의, 그저 무뚝뚝하고 불친절할 뿐인 버스 기사는 귀찮은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타려면 빨리 타, 라고 언성을 높였다. 당황한 나는 그대로 차에 올랐다. 버스는 덜컹, 출발을 하고, 나는 운전석 옆의 손잡이를 잡고 멍하니 서서 한참을 어느 곳에 시선을 둬야 할 지 모르고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간간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나도 있었지만, 그 시선은 하나같이 타인이었다. 말하자면, '나'를 '나'로 인식하고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무표정한 나도 있었고, 미소를 지어주는 나도 있었지만 그것이 나 자신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의 거대한 공포를, 무언가 굉장히 끔찍하고 암울한 것이 발목을 낚아채는 듯한 그 기분을, 나는 여전히 가끔씩 악몽을 통해 경험한다. 내가 만약 짧은 언어를 쓰는 아이였다면, 분명 그 순간에 와락 울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짧은 언어를 쓰는 아이가 그런 경험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랬다면 그 순간은 단지 일회용 악몽으로 변해버리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언젠가 한번 술자리에서 내뱉을만한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긴 호흡을 타고난 자다. 십육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수련을 한 뒤에야 비로소 이런 식으로나마 털어낼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만약 내가 몇 십 년에 걸친 고행을 각오한다면, 나는 어린 시절 내 고독의 이유를 잊어버린 것처럼, 내가 고독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나의 스승님은 그의 생애 가장 자랑할만한 수제자를 두게 되는 셈이다. 여하튼 나는 그 순간의 영원 같은 공포를 참아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아냈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 순간은 지나가 버렸다. 그러자 내가 보고 있는 타인으로서의 내가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타인인 동시에 나였다. 그들은 나에게 다정할 권리도 있고 무심할 권리도 있는 나 자신이었다. 골방의 시체처럼 고독할 수 있는 존재이자, 까맣게 우글거리는 개미떼처럼 집합적인 존재였다. 사랑과 그 반대말, 모두를 동시에 긍정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버스가 다시 덜컹, 다음 정거장에 정차했다. 다른 손님들이 하나 둘씩 올라탔다. 나는 그들이 비로소 내가 찾은 친근함을 깨뜨리는 것에 불안했지만, 사람들이 버스를 꽉 채울 정도로 몰려와도 그 친근함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게다가 그 누구도 우리가 모두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 사실이, 날 더욱 안도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뒤로 짧은 호흡 명상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을 선택했었다고 해도 당시엔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최선의 선택을 통해서 나는 열 세 살부터 조금씩 고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열 세 살 이후로, 나의 긴 언어는 두 번의 그럴듯한 해를 함께하게 된다. 타인을 통해 긴 언어에 힘을 주고 가까스로 마침표를 찍어가던 시기를 거쳐, 스물 세 살과 스물 일곱 살에는 긴 언어에 쉼표를 찍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돌이켜보니>라는 수식이 붙기는 한다. 당시에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꼈던가? 몇몇 빼어났던 순간 외에 난 역시 항상 불안하고 두려웠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야, 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항상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 듯한 외로움, 잡념으로 가득 찬 불면의 밤, 지표 없는 공허함 등의 사춘기 감정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그건 천성이고, 병이었다. 알다시피 난 긴 언어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고, 노력해서 중화될 수는 있었지만 근본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나는 짧은 언어를 이해하는 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뿐, 내 존재 자체가 짧은 언어를 소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물 세 살과 스물 일곱 살 적에는, 긴 언어의 묘미를 나름대로 탐닉하고 있었고, 온갖 잡다한 괴로움의 한복판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거다. 나는 그 때 바로, 자유로웠다. 가난하고 하는 일 없고 쓸데없는 지방덩어리 뇌만 돌리고 감상에 젖어 질퍽거리는 한심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 그 때는 자유로웠다는 것. 고독과 자유가 친구가 되면 당신은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있다. 스물 세 살,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타인이 되어 보거라.> 완벽한 이방인. 단 한 명의 지인도 없는 곳으로 떠나라고 하셨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신기하게도, 그 말씀이 굉장히 편안하게 느껴졌다.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눈빛으로 수긍하자, 스승님의 얼굴에 짧은 미소가 스쳤다. <네 발바닥에 고독을 심었다.> 마지막 말씀을 마음과 발바닥에 새기고, 단정히 인사 드린 후, 집으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꾸렸다. 그것이 스승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북경에 갔다. 난생 처음 외국 땅을 밟고 느꼈던 미열 같은 흥분. 23년간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 동안 내가 아무리 방황했다고 한들, 나는 철저하게 익숙한 도시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체험이었다. 이방인이 되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다시 알아나가야 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공간에서 나를 새로 써나가야 했다. 낯설고, 찌릿찌릿하고, 답답하고, 망설여지고,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가끔 터무니없이 생경한 사람들 틈 사이에 서 있노라면 원인 모를 메스꺼움과 현기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절대로 당황해서는 안 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무언가 짧은 것을 생각해내야 한다. 민망할 정도로 짧은 것들을 연상하다 보면 어느새 불쾌감은 사라지고, 짓궂은 용기가 슬그머니 제 길이를 늘이는 법이다. 후미지고 복작거리는 멋대가리 없는 숙소를 구하고, 그 곳에서 일년을 보냈다. 숙소 이름은 동왕장. 그 곳엔 전 세계 방방곳곳에서 몰려든 짧은 언어 사용자들이 득실득실했다. 우리는 서로 힐끔거리며 호기심을 교환했고, 마침내 곧잘 어울리게 되었다. 밤마다 맥주를 마시며 어울리고, 서로 경쟁하듯 요리를 했다. 누군가는 기타를 쳤고, 구석구석 다툼도 있었다. 모국어에 상관없이 연애가 시작되고, 취향이 맞는 무리들이 형성됐다. 낮에는 공원에 다니고 밤에는 클럽에 갔다. 지글지글 기름진 양꼬치를 즐겨먹고, 사람들을 모아 한바탕 후오구오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제법 매력적인 두 명의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짙게 빛나는 갈색 피부가 매력적인 유카는 언제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묘한 눈빛은, 마치 길게 잘 뽑아낸 면발처럼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했다. <길고, 은근하게.> 그녀의 지시에 따라 연습을 해보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언어가 길다고 해서, 눈빛까지 길어지지는 못한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설희는 모든 액션의 창시자였다. 유카와 나는 설희의 행동 반경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느 날, 셋이 맛없는 찡장로쓰를 먹는 중에, 그녀가 상해에 가보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분명 혼잣말이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상해탄이었다. 우리는 싸구려 불꽃을 흔들어대며 화려한 야경을 향해 돌진했다. 중력에 개의치 않는 설희의 액션이 존재의 가속을 명령했고, 우리는 흔쾌히 박차를 가했다. 상해가 우리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너무 빨라서, 상해라는 도시가 긴 것인지 짧은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북경으로 돌아오고 얼마 후, 몇 십 년 만에 한번씩 돌아온다는, 끔찍하게 몽환적인 밤이 찾아왔다. 역시나 재빠르게 설희가 맥주와 돗자리를 챙겨왔다. 유카는 드디어 이케아에서 구입한 램프를 쓸 일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나는 담요를 챙겼다. 동왕장 앞 공터에 다국적 짧은 언어 사용자들이 몰려들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밤 하늘 가득 무섭게 유성이 쏟아져 내렸다. 뚜욱. 뚜욱. 뚜욱. 빛나는 돌맹이들이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반짝임보다, 추락의 속도에 감탄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아하게. 슬프게. 쏜살같이 떨어져 버리는 우주의 찌꺼기. <저 돌에 맞아 죽고 싶어.> 설희가 속삭였다. 나는 그녀와 빛나는 돌맹이가 충돌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영혼과 우주가 만물의 법칙을 무시한 채 서로를 향해 쾌속 질주한다. 서로에게 내뿜는 불멸의 살기가 영원의 속도로 업그레이드 된다. 상상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이듬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스승님을 찾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스승님은 말 그대로 감쪽같이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복받친 상실감이 내면의 제어 장치를 망가뜨리고, 속도를 오염시켰다. 그리하여 스물 일곱 살까지, 나는 속도의 마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가까스로 살아냈다. 평상시에는 내가 긴 언어를 타고난 존재라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다. 두 번의 연애를 하고, 두 번 이직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술을 마셨고, 두 달에 한번씩 감기를 앓았다. 그렇게 스물 일곱 살이 되고 보니, 나는 세 번째 연애를 하고 있었고, 세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은 계기로, 제어 장치를 찾게 되었다. 생뚱맞게도, 그것은 그림이었다. 처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정말이지 대수롭지 않은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하루키의 단편 소설 <토니 다키타니>를 영화화 했다는 기사를 보고,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애인 K를 반강제로 잡아 끌고, 국내 유일 개봉관을 찾아 종로까지 갔다. 하루키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 중에 <일곱번째 남자> 다음으로 좋아하는 소설이 <토니 다키타니>였다. 어떤 느낌으로 만들었을까, 기대를 심하게 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기대가 심하면 어떤 식으로라도 실망을 하게 된다. 심지어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던 애인 K까지도 심하게 실망을 했다. 두 사람의 실망이 맞닿으면 실망 게이지는 가속도가 붙어 증폭해 버린다. 나는 못생긴 남자 주인공도 용서하기 싫었고, 옷 못 입는 여자 주인공에는 실소를 퍼부었다. 잘난척하는 하루키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내 머리 속에 그려놨던 소설의 세계를 다르게 표현한 영화를 신랄하게 비웃어줘야 했다. 밉상이 따로 없었다. 다만.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고 난 후, 토니 다키타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계속 마음과 머리를 때렸다. 그 남자는 고독해서 그림을 그렸다. 있는 그대로 똑같이 그리는 것엔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다. 특히 기계처럼 감정을 담지 않고 정교하게 그려낼 수 있는 소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완성했다. 마음을 담지 않고 몰입하는 것. 그래서 고독한 시간을 견디어 내는 것. 그것이 토니 다키타니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였다. 내가 그렇게 고독했던 걸까? 아니. 적어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는 않았다. 태생적으로 긴 언어를 사용한다는 불편함 외에 당시 내가 특별히 고독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한동안 오염된 속도에 채여 제대로 된 호흡을 해 본지도 오래였다. 하지만 누군가, 엄살이라고 탓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얘기해봐, 자기 연민이라고 탓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털어놔봐, 라고 한다면 나는 스물 일곱 살 전에도, 스물 일곱 살에도, 스물 일곱 살 후에도 <나는 고독해!>라고 외쳤을 것이다. 타고난 영혼을 끝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망각하는 것은, 나쁘기까지 하다. 하지만 고독의 정도를 떠나서, 마음이 간지러운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가, 어떤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간지러움을 태우고 있었다. 간지러움을 참다 못해 까무러칠 듯이 괴로웠다. 내 육신은 자지러지고, 내 영혼은 발작했다. 어이없게도, 이 증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다시 재발했기 때문에, 회사에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결국 사직 사유에 암 투병, 세 글자를 적어 넣고 과감하게 퇴사했다. 고통이 무서워서 두려움이 사라진 셈이다.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다녀본 미술 학원 정도, 작은 미술 대회에서 몇 번 수상한 정도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칭찬도 제법 들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스스로 무엇인가를 그려본 적은 없었다. 무작정 일러스트 학원을 등록하고, 무식한 용기로 첫 수업을 들었다. 십 몇 년 만에 해보는 데생이었다. 우습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명암의 기초 부분에서부터 좌절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좌절감이 아무리 크다 한들, 발작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통 받지 않기 위해 그리는 그림은 치열하고 처절하다. 나는 미지의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는 불쌍한 존재였다. 발버둥의 말미에서 숨이 차오르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겠다 싶던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혹은 절실하게 짧은 명상 호흡법을 시도했다. 위기를 느낀 육체가 오래 전의 그것을 기억해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서서히, 긴 언어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머지않아 호흡이 자연스러워지자,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에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붓을 내려놓고, 방금 그려놓은 파란 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파란 새가 아주 긴 언어로 충고를 전했다. <존---재---를-----------망---각---한-----------죄> 파란 새에서, 스승님을 느꼈다. 고통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잃었고, 돈은 바닥이 났고, 몸은 삐쩍 말라 볼품이 없었다. 오로지 내가 다시 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이 수확이었다. 내 영혼은 또렷했고 투명했으며, 무엇보다 진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희로부터 편지가 왔다. 봉투 속에는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과 함께 짧은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앙코르와트에 가자. 마법에 걸린 듯, 정신을 차려보니 방콕 공항이었다. 눈 앞의 설희를 보자마자 단박에, 그녀의 때묻지 않은 속도에 감화되어 버렸다. 진심으로 그녀와의 재회를 기뻐하면서 21세기 최악의 버스에 몸을 싣고 캄보디아 국경을 향했다. 앙코르와트. 그 곳에서, 유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앙코르와트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헤드라이트가 망가진 버스가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비포장도로를 질주했다. 번개가 칠 때마다 옆자리에 앉은 설희의 얼굴이 번쩍였다. 번개는 그녀가 반할 만한 소재다. 분명 감동하는 눈빛이었다. 그 때였다. 차가 푹, 꺼지는 소리가 났다. 이건 그저 웅덩이도 아니겠어, 앞자리의 금발 남자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차를 미는 수밖에 없었다. 빗줄기가 워낙 세서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다. 모두가 사력을 다해 버스를 밀었다. 사방의 어둠이 더욱 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머리 위로는 끊임없이 번개가 쳤다. 차가운 은빛 번쩍임이 농염해질수록 시소폰의 붉은 땅이 꿈틀거렸다. 검은 구름과 붉은 대지 사이에서 파열된 물방울들이 방전을 꿈꿨다. <이 곳에서 벼락 맞아 죽었으면.> 나는 설희가 이 암흑천지에서 벼락의 제물이 되는 것을 상상하며 웃었다. 그 순간, 얄궂은 번개들을 제치고 위대한 벼락이 저 너머에 강림하셨다. 쫘악, 무엇인가 장렬하게 갈라지는 것이 명도(明度)로 느껴졌다. 사람들이 그 장관을 보고 기겁하는 동안, 나는 설희의 눈이 남몰래 반짝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귀여울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극도의 피곤 상태로 도착한 시엠립에는 몇 세기에 걸쳐 우리를 기다려 온 앙코르와트와 한 시간 만에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 국경을 넘은 유카가 있었다. 땀과 비, 먼지 범벅이 된 꼬락서니에 혀를 차며 유카가 말했다. 돌아갈 때는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자. 우리는 반항할 힘도 없어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카가 싱긋 웃으며, 예의 면발 같은 눈빛을 뽑아냈다. 숨 죽이고 있던 그리움이 울컥했다. 나답지 않게 눈물이 났다. 그 후 캄보디아에서 어떤 고생을 했는가를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여행 전반에 깔린 불편함이 없었다면, 아마 앙코르와트에서 느꼈던 감정의 반에 반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우리는 유카의 푸념을 감수해야 했다. 그녀의 적은 바퀴벌레만한 모기와 에어컨 없는 2달러짜리 숙소,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살갗을 벗겨내는 저 위대한 캄보디아의 태양이었다. 우리는 일부러 앙코르와트를 마지막 여행지로 남겨두었다. 시엠립의 구석구석까지 세 번 이상은 들렀다고 생각될 때에야 비로소 앙코르와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앙코르와트의 긴 참배로(參拜路)를 지나면서부터 나는 연신 감동하여 말수가 적어졌고, 설희는 신나서 뛰어다녔고, 유카는 사진을 찍을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하늘의 무희가 정글 위에서 춤을 추며 시바(Siva)의 분노를 잠재우고 있었다. 익랑과 회랑의 서커스가 펼쳐지고, 거대한 뱀이 요동쳤다. 나는 축제의 환영 속에서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득함을 느꼈다. 수미산(須彌山) 중심에서 고양된 에너지가 발산되고 있었다. 강한 현기증이 호흡을 앗아갔다. 쉴 곳이 필요했다. 우리는 앙코르와트의 구석진 그늘을 찾아 돌 바닥에서 낮잠을 청했다. 시간이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얼마나 쉬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히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필름은 천천히 감겼고 초침이 분침이 되었다. 미풍이 불어오고 나비가 춤을 추는 시간, 귓가에 아스라이 신의 입김이 느껴졌다. 살포시 실눈을 뜨자 오래되어 빛 바랜 햇살이 다가오고, 절대적 무음 속에서 난생 처음 듣는 음악이 피어났다. 진정한 휴식은, 치유다. 부드럽고 커다란 손이 내 마음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긴 언어에 쉼표를 찍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 새벽엔 해돋이를 보러 오자. 짧은 낮잠 타임이 끝나고, 모두들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돌아갈 때 그냥 버스 타자.> 설희가 중얼거렸다. 아마 우리는 저도 모르게 21세기 최악의 버스에 몸을 싣게 될 것이다. 설희의 속도는 언제나 최고의 타이밍에 맞추어 우리를 싣고 간다. 유카가 길고, 은근한 눈빛을 던졌다. 긍정의 의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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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hiist
2007/09/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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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시네요.
리플따라 오게 되었는데, 어느새 이 곳, 저 곳 다 둘러보게 되네요.
자주 들르게 될 것 같은데,
괜찮죠?
극장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도 구경꾼들로 가득했습니다. 쇼 관람을 하고 싶지만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지요. 아이들은 바로 그 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바탕 거리 홍보 공연을 마치고 온 터라 다들 무척 피곤했지만 쉬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덩치 큰 아이가 손에 든 모자에 갈수록 동전과 지폐가 쌓여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겠어!>
링이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라라에게 소곤거렸습니다.
<난 저녁은 먹지 않아도 좋으니, 새 발레슈즈를 가지고 싶어.>
라라는 닳아빠진 슈즈를 내려보며 한숨 지었습니다. 춤을 추면 출수록 발이 아파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저 사람이야! 일곱 번째 도시에서 가장 큰 블루엔젤 극장의 주인! 일곱 번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일곱 번째 도시에서 가장 부자인 괴짜 신사!>
사람들이 관심이 일제히 괴짜 신사에게로 향했습니다. 라라와 링도 너무나 궁금해서 어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구경했습니다. 광이 번쩍번쩍 나는 커다랗고 까만 차에서 내린 괴짜 신사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의 환호에 답했습니다. 챙이 좁고 높게 솟은 검은 모자에 가지런한 콧수염, 기다란 지팡이를 든 모습이 매우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저런 사람이 뭐가 그렇게 괴짜라는 걸까? >
라라는 이상하게도 괴짜 신사에게 단박에 호감을 느꼈습니다.
<저런 사람은 어떤 집에서 살까? 아마 아름다운 부인과 귀여운 딸이 있고, 윤기 나는 긴 털을 가진 커다란 강아지도 키우고 있겠지. 여행과 모험도 실컷 즐기고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주면서 굉장히 멋있고 재미있게 살 것 같아. 아, 괴짜 신사는 얼마나 행복할까!>
괴짜 신사가 붉은색 카페트 위에 오르자 늘씬한 미녀들이 일제히 발랄하게 인사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괴짜 신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그 중 가장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여인에게 정중히 인사했습니다. 금발머리의 아가씨는 몹시 흥분된 표정으로 기꺼이 괴짜 신사의 파트너가 되어 팔짱을 꼈습니다. 둘이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나니, 라라는 갑자기 몹시 그 안에 들어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링, 우리도 저 안에 들어가보자.>
링의 작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누가 우릴 저기 들여보내주겠어? 우린 초대받지도 못했고,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게다가 대장한테 들키면 큰일날 거라고!>
링의 말이 모두 맞았지만, 라라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네가 안 가면, 나 혼자라도 다녀오겠어.>
링이 아무 말 없이 라라를 바라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습니다.
<좋아. 같이 가자! 너만 혼자 보내긴 싫어.>
라라와 링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빙 돌아 걷다가 극장 건물 뒤쪽에 있는 커다란 철문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철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링이 머리핀으로 자물쇠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라라는 몹시 낙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 때, 라라의 눈 앞에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요란한 분장을 한 삐에로였습니다.
<꼬마 둘이 이 곳에서 뭘 하는 걸까? 흠, 요 녀석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너, 이 자물쇠를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삐에로가 한 손으로 링의 뒷덜미를 번쩍 잡아 올렸습니다. 놀란 링은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발버둥을 쳤습니다. 라라는 너무 놀라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삐에로가 허리를 숙여 라라의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댔습니다.
<쇼를 보고 싶니?>
라라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습니다.
<흐음. 그럼 좀도둑인가? 손님들의 귀중품을 슬쩍하려고?>
라라는 조금 더 세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흐으음.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 삐에로는 궁금한 걸 못 참거든. 이유를 말해주면 데리고 들어가 줄 수도 있지.>
<정말이에요? 라라, 말해봐. 저 안에 왜 들어가고 싶은 거야?>
링도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괴짜 신사를......>
라라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습니다.
<뭐라고? 잘 안 들린다. 극장에 들어가기 싫은 건가?>
삐에로가 라라의 입 앞에 귀를 바짝 대었습니다.
<괴짜 신사를 만나고 싶어요!>
라라의 외침이 조용한 골목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 주세요.>
삐에로가 허허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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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역시 봄인지 가을인지 알 수 없는 날씨였습니다. 꽃도 없고 낙엽도 없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희한한 계절, 일곱 번째 도시의 사람들은 더 이상 계절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난히 짙게 내려앉았던 노을이 사라져가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에서 나와 주황색, 녹색, 보라색 등불을 밝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막 일어난 것 같았는데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아 보였습니다.
골목 귀퉁이에는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소녀, 라라가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서있었습니다. 라라는 가만히 골목 벽에 기대어 서서 거리가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삼일 내내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몹시 피곤했지만 이 시간만큼은 졸린 것도 배고픈 것도 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등불을 밝힌 곳은 라라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가게! 풍선만한 딸기와 보라색 바나나, 세상에서 가장 신 수박을 팔기로 유명한 과일가게입니다. <과일가게가 문을 열었으니 이제 옷 가게 언니가 나와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겠지.> 라라의 생각대로 곧 옷 가게 불이 켜지고 쇼윈도우의 마네킹 옷 매무새를 고치는 점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옷 가게 여점원은 날마다 한껏 멋을 부리고 출근을 합니다. <옷 가게가 문을 열었으니 이제 우동집 아저씨 차례지!>이번에도 역시 라라의 생각대로 불뚝 나온 배 위로 하얀 앞치마를 두른 주방장 아저씨가 가판대 너머로 나타났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 국물을 휘휘 저으며 맛있는 냄새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장난감 가게인데......>
하지만 오늘따라 장난감 가게는 더디 문을 열려나 봅니다. 벌써부터 아이들이 장난감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장난감 가게의 주인은 꼬마 빌리입니다. 빌리는 주근깨 가득한 개구쟁이처럼 보이지만 수백 가지 진귀한 장난감을 사고파는 어엿한 사장님이랍니다. 일곱 번째 도시에서 <꼬마 빌리의 장난감 가게>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여섯 번째 도시나 여덟 번째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요.
<라라! 아직도 여기 있으면 어떡해! 더 꾸물거리다간 대장한테 엄청 혼날 거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라라를 향해 뛰어온 아이는 라라의 가장 친한 친구 링이었습니다. 링은 언제나 그렇듯 까맣고 긴 머리를 양 옆으로 동그랗게 말아서 리본으로 묶고 비단으로 된 짧은 치파오를 입고 있습니다.
<어서 가자!>
라라는 좀 더 거리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링의 손에 이끌려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장을 화나게 했다가는 저녁식사는 구경도 못할 수 있거든요.
라라와 링이 헐레벌떡 뛰어 도착한 곳은 먼지 풀풀 흙 길 위에 판자집이 즐비한 작은 마을 이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귀 익은 대장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냉큼 와서 준비하지 못해! 벌써 도시의 등불이 다 밝혀진 거 안보여? 오늘 밥벌이 제대로 못하면 내일 저녁까지 쌀 한 톨도 구경 못할 줄 알아라!>
놀란 링이 황급히 라라의 외투를 벗기고 다시 라라의 손을 잡고 뛰었습니다. 오호라, 낡아빠진 외투 안에 어여쁜 발레복을 입고 있었군요.
<죄송해요, 대장! 우린 일찌감치 의상도 갈아입고 요 근처에서 연습하고 있었는걸요. 얼굴에 분칠만 하면 준비 끝이에요. 금방 할게요. 금방.>
비좁은 판자집 안에는 다른 아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링은 아이들 틈에 끼어 급한 마음에 삐뚤삐뚤 눈썹을 그리면서도 틈틈이 라라의 분장을 도와줬습니다. 대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출발!>을 외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갔습니다.
<라라! 날개를 잊었잖아.>
링은 아이들을 따라 나서려는 라라를 불러 날개 장식을 달아 줍니다. 링은 역시 라라의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첫 번째 마을, 두 번째 마을, 세 번째 마을, 네 번째 마을, 다섯 번째 마을, 여섯 번째 마을을 거쳐 일곱 번째 마을까지 왔습니다! 한번 놓치면 평생 후회할 기상천외한 공연! 그냥 가지 말고 한바탕 즐기다 가세요!>
가장 덩치 큰 아이가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체크무늬 모자를 쓴 아이가 바이올린을 켜자 옆의 아이는 흥겹게 탬버린을 치고 앞의 아이는 아코디언을 연주합니다. 음악에 맞추어 라라가 턴을 돌고 링이 재주 넘기를 선보입니다. 굴렁쇠를 돌리는 아이, 접시를 돌리는 아이, 마술을 하는 아이...... 모두 저마다의 장기를 펼쳐 보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잡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모이질 않습니다. 건너편 으슥한 골목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대장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이런, 오늘은 <꼬마 빌리의 장난감 가게>에서 50% 할인 이벤트를 하는 날이라고. 오늘은 제아무리 신기한 공연을 한다 해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거야.>
심사가 불편해 보이는 대장의 곁으로 요란한 분장을 한 삐에로가 슬그머니 다가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오늘 장사는 허탕이군.>
대장은 애꿎은 삐에로를 째려보며 투덜거렸습니다.
<어디 오늘뿐인가? 내일은 일곱 번째 도시에서 가장 큰 <블루엔젤 극장>에서 화려한 쇼가 펼쳐질 텐데.>
삐에로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놀리듯 대꾸했습니다.
<망했군. 이틀 내내 아이들에게 죽 한 그릇 먹일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야.>
<어라, 아이들을 걱정하긴 하는 건가?>
<걱정? 밥을 주지 않으면 저것들이 빌빌거리고 칭얼댈걸 생각하니 귀찮아서 하는 말이야.>
대장과 삐에로는 잠시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봤습니다. 아이들은 서너 명의 구경꾼들을 위해 열심히 재주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무언가 불안한 듯이 힐끔힐끔 대장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제안을 하나 하지.>
삐에로가 대장을 향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내일 저녁에 저 아이들을 데리고 <블루엔젤 극장> 앞에서 공연을 해주지 않겠나? 화려한 쇼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 이목도 끌고 눈요기거리도 제공하고 괜찮을 것 같은데.>
대장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삐에로를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광대 주제에 나에게 일거리를 주겠다고? 그것도 일곱 번째 도시에서 가장 큰 극장의 홍보 공연을?>
<날 의심하는군. 하고 안하고는 당신 마음이야. 생각 있으면 내일 해 질 무렵에 극장 앞으로 오라고. 그럼 이만.>
삐에로는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껑충껑충 팔자 걸음으로 뛰면서 사라졌습니다. 대장은 삐에로의 뒷모습과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블루엔젤 극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했습니다. 커다란 네온사인과 갖가지 조명등이 어찌나 눈부신지, 극장 앞에 몰려든 사람들 눈동자는 별이 가득 뜬 것처럼 반짝였습니다. 붉은색 카페트를 길게 깔아놓은 계단 양쪽에는 늘씬한 미녀들이 친절한 웃음으로 귀빈들을 맞이했습니다. 연미복을 입은 신사들과 드레스를 입은 숙녀들이 저마다 팔짱을 끼고 차례차례 입장했습니다. 극장 안에서 힘찬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울려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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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파에 묻혀 길을 걷고 있었다. 아침의 거리는 치열하고, 걸어 다니는 것들은 보잘 것 없었다. 나는 역시 우울했다. 모닝커피의 장단점처럼 인생은 좋고 싫음의 연속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옷깃을 세웠다. 겨울 바람이 차가웠다. 역시, 우울했다.
그리고 그 때 지진이 일어났다.
나는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다가 갑작스레 어이없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때가 있다. 심각할 정도로 빈번한 증세가 아니어서 병원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영혼의 저 편에서 들리는 공명음처럼 거대하고도 근원적인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세상 모든 것들과 더불어 스러질 때도, 나는 순간 그것이 내 자신의 결여된 균형 감각 때문인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나의 신체나 영혼의 불균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백한 지진이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신문에서 종종 거대 지진에 관한 소식을 접하곤 했지만, 그런 일이 내 발 밑에서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멀리 있는 공포는 스쳐갈 뿐이다. 가끔 착한 마음을 먹고 깊은 애도와 기도를 겸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정도는 세상의 악순환을 피해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세상의 재난을 막을 만큼 충분한 행동은 없는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시멘트 바닥의 균열된 틈 사이에 빠져 몇 십 미터쯤 추락해 무언가 둔탁한 감촉을 등 뒤로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한 순간에 닥친 감당할 수 없는 공포는 오히려 조용하고 깊은 잠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한번도 기절해 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죽음에 가깝도록 잠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불만을 품을 새도 없이 그냥 그런 식의 잠을 기꺼이 맛보았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얼마 후 잠에서 깨고, 시공(時空)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채로, 그저 본능적으로 두 팔을 펼쳐 어둠 속을 헤집던 중에, 놀랍게도 손에 잡힌 것은 스위치였다. 딸깍. 스위치를 켜자 지하세계의 불이 밝혀지고 지상의 햇빛보다 눈부시게 밝은, 빛의 소나기가 내렸다.
<어둠의 빛이다.>
그 곳에는 공포와 고통 속에서 안식을 찾은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중에 한 명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요한 텔레파시를 전해왔다.
<지상에서 숨을 참았던 사람들만 이 곳에 올 수 있다. 이 곳은 우리가 축적해놓은 숨의 에너지로 빛을 만들어 사는 지하세계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는 가끔, 숨을 참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책을 읽을 때나, 길을 걸을 때, 샤워를 할 때나, 음악을 들을 때, 마치 고집이 발동한 사람처럼 무의식적으로 숨쉬기 운동을 멈추고 있는 것을, 왜일까 잠시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정답이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놀이도 <오래 숨 안 쉬기>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이었고 은밀하고 묘한 쾌감도 맛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놀이는 곧 잊었지만, 지금도 보통 사람 이상은 숨을 쉬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또,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그랑블루>이다.
숨의 에너지를 모아 만든 빛은 오염되지 않은 영혼의 대기를 뚫고 강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그 빛을 온 몸으로 맞으며 제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낮도 밤도 아닌 빛의 시간대에 머무는 사람들은 현실이 곧 추억이었다. 모든 것이, 빛의 사고(思考) 안에서 가능했다.
<너는 이 곳에 처음 왔으니 여왕을 만나러 가자.>
부드러운 텔레파시에 이끌려 빛의 터널을 통과해 도착한 곳은 밀집된 광선(光線)들이 만든 백궁(白宮)의 중심이었다. 여왕은 삶과 죽음의 가장 완벽한 중간지대에서 지하세계의 영혼들을 지키고 있었다. 가장 제대로 된 꿈을 꾸며 흔들림 없는 감정(感情)에 머무는 존재였다. 그녀는 또한 지상세계에서 스스로 숨을 참고 죽어버린 불멸의 사체(死體)이기도 했다. 나는 나를 대하는 그녀의 영원한 침묵 속에서 처음으로 경외감이라는 것을 맛보았다. 행복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 곳에 머물기로 했다. 마침내 도착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끝이 아니라고, 내 자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빛은 언제나 시작이자 영원이다.
그 사실이 좋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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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새벽이다. 커피가 필요해. 당장 원하는 것은 그것 뿐. 누운 자리에서 그 생각을 백 번 정도 하고 나서야 느릿느릿 일어날 수 있었다.
- 또 이런 기분이야, 아저씨.
말간 물빛이 보일 듯한 연한 커피. 홀짝홀짝. 십분 정도를 의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커피를 홀짝댄다. 조금씩 정신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어김없이 반복되는 새벽의 기상.
- 그래요. 이제 정신이 좀 들었다고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푹신한 1인용 소파에 몸을 묻은 채로 신문을 읽는다. 머리카락 끝에서 신문 위로 똑똑 물방울이 떨어진다.
사실, 신문에서 뭐라고 떠들던 나와 상관있는 일은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 채로 살아온 지 23년 4개월이 지나던 어느 날, 그 날이 오기까지는.
- 아저씨. 오늘은 이상하게 일 나가기 싫다.
그 전까지는 나도, 무언가를 하던 사람이었다. 분명히. 하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단지 확연히 손으로 낚아챌 수 있는, 말로 잡아낼 수 있는 기억이 아닐 뿐이다. 내가 분명 정확한 신분을 가진 여자였다는 것을, 굳이 증명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한사람 있다. 아저씨다.
아저씨를 만나던 날부터의 기억은 아주 선명하다. 계절은 봄. 약한 바람 냄새가 개운하고 찬 공기에 섞인 햇빛이 지독하게 몸을 간지럽히던 날이었다. 아저씨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내가 오늘은 어떤 뉴스가 있냐고 묻자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신문을 덮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아저씨가 날 좋아해 주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여름에, 아저씨는 자신이 신문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내게 말해주었다.
- 범죄야.
-응?
-범죄를 찾고 있어.
매일 매일, 흉악한 일들이 일어난다. 날이 갈수록 더욱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신문 속에는 언제나 그런 범죄 사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왜 굳이 찾는다는 거지?
-내 사명이기 때문이야.
나는 아저씨의 특이한 언행을 좋아했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한눈에도 튀는 사람은 정작 알고 나면 그닥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아저씨같은 사람은 다르다. 조용히, 자세히, 자근자근 벗겨지고 풀어지고 배어나는 맛이 있다. 그래서, 아저씨를, 참, 좋아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아저씨가 자신의 사명을 밝힌 것은 제법 힘든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이었으므로, 그리고 처음 있는 일이었으므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나는 연약한 여자애였는데, 왜 하필 나였어?
아저씨는 자신이 맡은 구역의 범죄를 찾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는 매일을 거르지 않고 신문과 뉴스를 챙겼었다. 하지만 아저씨 말로는 신문이 그닥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아침의 입맛을 돋구기에 맞춤일 뿐이라고 했다. 뉴스는 자기 전에 체크하는데, 역시 그닥 쓸모 있어서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저씨처럼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범죄를 찾아내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본능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이 백퍼센트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커다란 실수는 좀체 일어나지 않았고 일은 매번 무사 처리되었다. 그것이 내게는 초능력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범죄를 찾아낸 후에 그 과정을 조사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상황부터 마무리까지 조금의 소홀함도 없이 면밀히 기록했다. 대략 하루에 열 장의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나중에 아저씨가 그 일을 나에게 넘긴다고 했을 때, 내가 가장 끔찍하게 여겼던 것은 매일 매일 제출해야하는 보고서의 양이었다.
아저씨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범죄를 좋아했다. 사건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이 있는, 그 과정이 고루 갖추어진 범죄야말로 인간적인 범죄라고 항상 말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저씨가 좋아하는 범죄들은 점차 적어져갔다. 그러자 아저씨는 점차 짜증이 늘고 입맛을 잃고 눈에 띄게 늙어갔다. 나는 아저씨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범죄를 진심으로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도저히 안되겠어.
여느 때와 다름없던 아침, 아저씨는 갑자기 읽고있던 신문을 집어던지며 자괴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제 나는 도저히 안되겠어. 네가 이 일을 맡아줘. 너 정도의 면역력이라면 괜찮을 거야.
처음엔 당황했다. 나름대로 그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지만,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나는 여성(女性)도 버려야했고, 신분도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했다. 아저씨만큼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범죄를 증오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충분히 싫어했다. 날마다 그런 범죄를 조사하는 것은 분명 싫증나는 일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나는 곧잘 욱하는 성질이 튀어나와서 조사를 망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경과만 보고하는 것일 뿐, 일체의 개입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박진감 넘치는 정의의 실현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심심한 일 보다는, 리쎌웨폰이나 다이하드 같은 액션을 꿈꿨다.
-그래서, 날 만난 걸 후회하니?
아저씨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멜 깁슨이나 브루스 윌리스가 날 후계자로 삼아줬다면 더 좋았을 걸. 아니면 콜롬보라도 말이에요.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미안하구나.
아저씨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한때는 아저씨가 범죄 찾는 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잘 알고 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비록 지치기는 했지만 차마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범죄 찾는 일을 한 지 몇십 년이 흘렀는데, 애초에 가지고 시작했던 의문은 이제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 처음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물음표가 되었다. 그 때까지도 아저씨는 기운을 추스리며 힘겹게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노쇠해지고, 범죄는 점점 사악해졌다. 결국 비대한 물음표의 공격에 압사하지 않는 방법은 끈을 놓아버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저씨는 떠나 버렸다.
오늘은 진한 범죄 냄새가 난다. 아저씨가 그토록 싫어하던 이유 없는 범죄임이 분명하다. 대략 용의자는 20대 남성이고 살인과 성폭행이 얽힌 잔혹 범죄일 것으로 추정된다. 예감이 점점 분명해질수록, 오늘은 정말 일하러 나가기 싫어진다.
-아저씨. 어제는 범인이 길거리에서 무작정 칼을 휘둘렀어. 두 명이 죽고, 열 명이 중상이야. 그 중 아이가 둘인데 한 명은 얼굴 반쪽을 난자 당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위독한 상태야. 그런데 말이야. 범인이 계속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그 중얼거림에 <이유>가 있었을까?
하지만 더 이상 게으름 피울 수는 없다. 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귀신같은 본능으로 범죄를 찾아 헤맨다.
-그 아이, 만약 살아남으면 잘 키워서 내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야. 이의 없지, 아저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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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 세살 적 이야기다.
나는 열 세살에 어떤 경험을 통해 이미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친 기억이 있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 약간의 과장을 덧대어 충분히 굉장한 스토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으므로, 그냥 간단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겠다.
그 전까지는, 난 굉장히 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아이였다. 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대단히 소심하고 집요하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특징을 빼면 남다를 곳이 없는 아이일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모두들 알다시피, 그런 증상이 심각한 아이를 - 그것도 여자아이를 -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 경험상으로는, 백퍼센트 없다.
지금은 긴 언어와 짧은 언어 사용자간의 갭이 많이 좁혀졌지만, 당시는 양극에 대한 편견이 굉장했다. 역시 짧은 언어 사용자의 유쾌함과 간결함이 조금 더 호감을 샀고, 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가가기 힘든 류의 사람으로 인식되어졌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때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이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므로, 나의 언어가 길고 지루하다는 사실에 깊이 상처받기도 했었다. 바로 그 상처가 지독하게 골을 파고 썩어들어 갔던 것이 열 세살 적 일이다.
열 세살의 나는, 참으로 고독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 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현재 스물 여섯살인 나는 짧은 언어 사용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짧은 명상 호흡법을 통해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길고 지루한 기억들의 절반 정도를 내 인생에서 소멸해 버렸다. 하지만 역시 모두들 보시다시피, 나는 아직도 능통한 짧은 언어 사용자가 아니다. 스승님도 말씀하시길, 태생이 긴 호흡을 타고난 자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에라도 기대어 사는 편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것이 내가 날마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이다.
어쨌거나 당시에 왜 내 곁에 부모님이 안계셨는지, 왜 이름 모를 타인들과 동거했는 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그냥 넘어가겠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고, 날마다 슬펐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내 주변에는 항상 타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는 상관 없었다. 그나마 타인의 존재로 인해 간간히 언어의 마침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마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세상에서 가장 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기네스에 올랐을 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것이 긴호흡의 달인으로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업적이라고 떠들어댈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인물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개인적으로, 열 세살은 굉장히 중요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경험은 영혼의 본질을 잡아먹는다. 나는 어느 날 버스를 탔고, 그 때 그러한 종류의 경험을 했다.
그 날은 운동회가 끝난 뒤라 있는 대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얀 체육복은 흙먼지로 얼룩이 졌고, 운동화 속에 작은 돌멩이들이 발바닥을 콕콕 찔러댔다. 항상 단정하게 내려놓던 앞머리가 땀범벅이 되어 흐트러져있고, 손으로 가릴 새도 없이 입을 쩍 벌리고는 연실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버스에 오르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열 세살의 나는, 제발 버스에 앉을 자리가 있기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물론 자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한 선물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버스 안에는 딱 한 자리만을 남겨두고 모든 자리에 내가 앉아있었다. 손톱 끝에 흙을 파내고 있는 아이, 손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정리하는 아이, 신발 한짝을 벗어 잔돌을 털어내고 있는 아이, 유행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아이,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졸고 있는 아이 등 정확히 몇 명인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였다.
버스에 오른 나는 당연히 놀랐고, 운전기사를 쳐다보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의, 그저 무뚝뚝하고 불친절할 뿐인 버스 기사는 귀찮은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탈려면 얼렁 타, 라고 언성을 높였다. 당황한 나는 그대로 차에 올랐다. 버스는 덜컹, 출발을 하고, 나는 운전석 옆의 손잡이를 잡고 멍하니 서서 한참을 어느 곳에 시선을 둬야 할 지 모르고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간간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나도 있었지만, 그 시선은 하나같이 타인이었다.
말하자면, \'나\'를 \'나\'로 인식하고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무표정한 나도 있었고, 미소를 지어주는 나도 있었지만 그것이 나 자신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의 거대한 공포를, 무언가 굉장히 끔찍하고 암울한 것이 발목을 낚아채는 듯한 그 기분을, 나는 여전히 가끔씩 악몽을 통해 경험한다.
내가 만약 짧은 언어를 쓰는 아이였다면, 분명 그 순간에 와락 울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짧은 언어를 쓰는 아이가 그런 경험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랬다면 그 순간은 단지 일회용 악몽으로 변해버리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언젠가 한번 술자리에서 내뱉을만한 이야기꺼리가 되어버렸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긴 호흡을 타고난 자다. 십 삼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수련을 한 뒤에야 비로소 이런 식으로나마 털어낼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만약 내가 몇십년에 걸친 고행을 각오한다면, 나는 어린 시절 내 고독의 이유를 잊었버린 것처럼, 내가 고독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 있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나의 스승님은 그의 생애 가장 자랑할만한 수제자를 두게 되는 셈이다.
여하튼 나는 그 순간의 영원같은 공포를 참아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아냈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 순간은 지나가 버렸다. 그러자 내가 보고있는 타인으로서의 내가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꼈졌다. 그들은 타인인 동시에 나였다. 그들은 나에게 다정할 권리도 있고 무심할 권리도 있는 나 자신이었다. 골방의 시체처럼 고독할 수 있는 존재이자, 까맣게 우글거리는 개미떼처럼 집합적인 존재였다. 사랑과 그 반대말, 모두를 동시에 긍정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버스가 다시 덜컹, 다음 정거장에 정차했다. 다른 손님들이 하나 둘씩 올라탔다. 나는 그들이 비로소 내가 찾은 친근함을 깨뜨리는 것에 불안했지만, 사람들이 버스를 꽉 채울 정도로 몰려와도 그 친근함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게다가 그 누구도 우리가 모두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 사실이, 날 더욱 안도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뒤로 짧은 호흡 명상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을 선택했었다고 해도 당시엔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최선의 선택을 통해서 나는 열 세살부터 조금씩 고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절반의 긴 언어 사용자이고, 여전히 고독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타고난 긴 호흡을 타고난 자로서 친근함을 맛 본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 사실은 스물 여섯, 내 인생의 커다란 위로이다.
이상이 나의 열 세살 적 이야기다.
끝.
(군데군데 드러나는 긴 언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신 분이 있었다면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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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하다.
그녀는 언제나 꼿꼿이 허리를 펴고, 가녀린 어깨에 살짝 힘을 주고, 하얀 목덜미에 은근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은(혹은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지만, 그런 기회를 얻은 사람들 치고 그토록 우아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 그녀의 행동거지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왜 그런 자세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지키고 있는 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성(城)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옥하지도 못한 땅에 이름 없는 건축가가 특별한 사연도 없이 지어놓은 성(城)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성(城)의 주인이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녀가 초대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그녀는 언제나 주변에 귀한 손님들이 우글우글한 것처럼 기품 있게 움직였다. 심지어 일개 사물에게조차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성(城)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 성(城)의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태어날 적부터 그 성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그녀는 찢겨진 낙엽처럼 굴러다녔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이가 나를 천하게 보았어요>라고. 한번은 성에서 하룻밤 묵고자 찾아온 나그네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창녀라고 조롱하며 나쁜 짓을 하려는 찰나에 나에게 걸려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그녀가 흘러흘러 이 성(城)으로 오기까지, 꼬박 이 성(城)의 나이만큼 걸렸다. 그녀는 운명의 존재에 무심했지만, 나는 그녀와 성(城) 사이의 인연, 그 이상의 운명을 믿었다. 내가 곧잘 그 둘의 운명을 논하자, 그녀도 이제는 담담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녀는 예쁘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웠다. 성(城)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존재감이 있었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고, 아주 가끔만 크게 웃었다. 성(城)은 드물게 꽃을 피웠고, 몇 해에 걸쳐 한번씩만 사방에 만개한 장미 넝쿨을 선사했다. 그녀는 혼자일 때만 울었고, 성(城)은 아무도 없을 때만 어두웠다.
처음에 나는 열흘에 한번씩 그녀의 성(城)을 방문했다. 조금 지나자, 나흘에 한번씩 찾아갔다. 그리고 한참 후엔, 하루에 한번씩 드나들게 되었다. 드디어 그녀는 자신의 성(城) 안에 나의 방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가지 약속을 하였다. 나의 운명을 거스르고라도 지켜내야 할 약속이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죽어버린다면, 나는 슬픔을 거둘 새도 없이 그녀를 성(城) 안의 양지바른 뜰에 묻고, 그녀와 그녀의 성(城)을 보살피며 살겠노라고. 그녀는 혹시나 나의 생(生)이 길지 않을 것을 염려해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수명을 내게 떼어주겠노라 했다.
그녀는 낮고 정결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성(城)을 지은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 그 사람은 보나마나 보잘것없는 명성에 변변치 않은 실력을 지닌 건축가일 거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희미하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분명히 당신처럼 말재주가 없었을 거야>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
그녀는 언제나 꼿꼿이 허리를 펴고, 가녀린 어깨에 살짝 힘을 주고, 하얀 목덜미에 은근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은(혹은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지만, 그런 기회를 얻은 사람들 치고 그토록 우아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 그녀의 행동거지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왜 그런 자세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지키고 있는 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성(城)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옥하지도 못한 땅에 이름 없는 건축가가 특별한 사연도 없이 지어놓은 성(城)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성(城)의 주인이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녀가 초대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그녀는 언제나 주변에 귀한 손님들이 우글우글한 것처럼 기품 있게 움직였다. 심지어 일개 사물에게조차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성(城)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 성(城)의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태어날 적부터 그 성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그녀는 찢겨진 낙엽처럼 굴러다녔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이가 나를 천하게 보았어요>라고. 한번은 성에서 하룻밤 묵고자 찾아온 나그네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창녀라고 조롱하며 나쁜 짓을 하려는 찰나에 나에게 걸려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그녀가 흘러흘러 이 성(城)으로 오기까지, 꼬박 이 성(城)의 나이만큼 걸렸다. 그녀는 운명의 존재에 무심했지만, 나는 그녀와 성(城) 사이의 인연, 그 이상의 운명을 믿었다. 내가 곧잘 그 둘의 운명을 논하자, 그녀도 이제는 담담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녀는 예쁘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웠다. 성(城)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존재감이 있었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고, 아주 가끔만 크게 웃었다. 성(城)은 드물게 꽃을 피웠고, 몇 해에 걸쳐 한번씩만 사방에 만개한 장미 넝쿨을 선사했다. 그녀는 혼자일 때만 울었고, 성(城)은 아무도 없을 때만 어두웠다.
처음에 나는 열흘에 한번씩 그녀의 성(城)을 방문했다. 조금 지나자, 나흘에 한번씩 찾아갔다. 그리고 한참 후엔, 하루에 한번씩 드나들게 되었다. 드디어 그녀는 자신의 성(城) 안에 나의 방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가지 약속을 하였다. 나의 운명을 거스르고라도 지켜내야 할 약속이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죽어버린다면, 나는 슬픔을 거둘 새도 없이 그녀를 성(城) 안의 양지바른 뜰에 묻고, 그녀와 그녀의 성(城)을 보살피며 살겠노라고. 그녀는 혹시나 나의 생(生)이 길지 않을 것을 염려해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수명을 내게 떼어주겠노라 했다.
그녀는 낮고 정결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성(城)을 지은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 그 사람은 보나마나 보잘것없는 명성에 변변치 않은 실력을 지닌 건축가일 거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희미하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분명히 당신처럼 말재주가 없었을 거야>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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