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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스트] 초현실적인 공포와 맞짱 뜨기 (13) 2008/01/14

~~ 스포일러스러운 구석이 있으니 영화 내용을 미리 알고싶지 않다면 패스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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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영화를 보던 날 퇴근 전에 렌지님과 메신져로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ㅁ'


2008-01-11  오후 3:32:50  [섬연라라] "인생을 포기하기는 쉽겠지만, 죽은 뒤 그것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지금이 최악의 시기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무슨 짓을 하든 견뎌내야만 한다."
2008-01-11  오후 3:33:03  [렌지]  멋진 말이당 
2008-01-11  오후 3:33:17  [섬연라라]   웅
2008-01-11  오후 3:33:28  [렌지] 마음속에 간직하면 좋을 말이다

위에 언급한 구절은 웹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문구인데, <검은 집>의 작가로 유명한 기시 유스케<유리 망치>라는 작품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냥저냥 업무 시간 틈틈히(!!!) 서핑 중에 눈에 들어온 문구가 그날 저녁 보게될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황당 시츄에이션의 교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ㅅ-

그 최악의 시기라는 것을, <미스트>에서는 최강의 공포와 마주한 순간으로 설정합니다. 아마 안개괴생명체는 밑도끝도 없는 공포감을 조성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겠지요. 먼저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짙은 안개를 쫘악 깔아주고, 안개 속에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을 낚아채다가, 토막난 피투성이 시체들에 경악할 때 즈음 하나 둘 씩 징그러운 괴물들을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마침내 괴생명체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했다하여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눈으로 보았음에도 그 실체에 무지하여 생기는 공포감은 우리를 더욱 더 강하게 조여옵니다.

도대체 저런 '있을 수 없는' 괴물은 어디서 어떻게 왜 나타난 걸까요? 극도의 패닉 상태에서 아수라장이 된 군중들은 일단 가장 기대기 쉬운 종교적 해석 속에서 공포에 대응합니다. 인류의 불안이 극도로 팽배해지는 세기말 무렵에 종말론이 대성하듯, 이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신의 분노인간의 원죄를 이야기하며 -심지어는 제물(祭物)론까지 주장하며- 태초의 문명, 기원전 성경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제 이성을 잃은 광신도들은 이런 참혹한 상황에 대해 탓할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군부대의 비호 속에 수상한 실험을 하던 과학자들 때문이라는 증언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젊은 군인은 영문도 모른 채 난도질 당해 개죽음을 당합니다. 칼부림 속에 피냄새가 진동하고 제물이 된 자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퍼지는 와중에, 선동한 자, 공모한 자, 방관한 자 모두의 눈빛에선 일종의 안도감이 엿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비겁한 생존 본능을 정당화합니다. 일단 거기까지 진행되면 그 뒤에 따르는 잔인한 살인은 그저 하나의 의식이 될 뿐입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일관성 있게,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은 컴퓨터 그래픽이 대세인 시대에 수작업으로 영화 포스터를 그리길 고집하며 자신이 얼마나 뒤처질 수 있는지에 대해 불안을 표현합니다. 군부대의 비밀 프로젝트에 대한 괴소문은 외계인 실험 등과 연관된 엑스파일 적인 내용이고,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은 것 혹은 전혀 배운 적 없는 것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부정해버리는 엘리트 법조인도 등장합니다. 무지하고 멍청하게 묘사되는 블루칼라 계급의 중년 남자는 시종일관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칩니다. 결국, 과학자들이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서 재앙이 일어났다는 설정은 우리의 무지가 우리가 모르는 것들로부터 얼마나 큰 공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 말해줄 수 있는 다분히 위트 섞인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로부터, 알 수 없는 존재의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그 마지막에서 황당함과 허탈함을 선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영화 속에서 생존의 정답이 없었듯이,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보호책도 가지각색이겠지요. 다만 저는 라스트씬에서 주인공의 절규를 들으며 그 날 오후의 글귀를 떠올릴 뿐이었습니다.

"인생을 포기하기는 쉽겠지만, 죽은 뒤 그것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지금이 최악의 시기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무슨 짓을 하든 견뎌내야만 한다."

사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들 가운데 유독 돋보이는 여인이 있었으니, 킹왕짜증 캐릭터 카모디 부인입니다. -_ - 어쩐지 우리나라 지하철이나 명동 거리에서 볼 법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목놓아 외치시는 그런 분이지요... /후우 심지어 카모디 아줌마 죽던 씬에선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나왔을 정도니까요...;;;
종교는 분명 인간 문명의 산물이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철학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카모디 부인은 그야말로 우리가 진정 있는 힘껏 싸워야 하는 상대는 미지의 괴생명체가 아닌, 우리 내면의 괴물이라는 사실을 그 존재로서 설파하고 있는 거지요. 영화 초반엔 그저 정신이 좀 이상한 아줌마 같아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정도였지만, 중반 즈음 공포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그녀의 존재는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전도는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꿀처럼 달콤한 유혹이 되어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카모디 부인이 그토록 맹신하는 종교는 그저 허울일 뿐, 그녀를 움직이는 것은 무지와 두려움, 이기심, 집착, 고독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카톨릭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 중에 한명으로 꼽히는 성 안토니우스는 20년 동안 동굴에서 홀로 악마와 싸우며 온갖 유혹을 이겨내고 마침내 영적 순결을 얻게된 인물입니다. 성 안토니우스의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하지요. 그 묘사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그린 겟세마니 동산의 수난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영혼의 리더십-마하트마 간디>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우리가 성인이라 일컫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기 안의 악과 투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가끔은 그것이 지독한 결벽증이나 편집증으로 보이리만큼 금욕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지요. 부인에 대한 욕망마저도 수치스러워했던 간디의 금욕주의는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돈이나 섹스 등의 세속적인 욕망이 죄가 되지 않고, 소유하는 것이 덕이 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잣대로 우리 안의 선과 악을 구별해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도대체 내 안에 있으나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그것과 어떻게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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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Ernst (1891-1976)
The Temptation of St Anthony. 1945.
Oil on canvas. 108 x 128 cm.
Wilhelm-Lehmbruck-Museum, Duisburg, Germany.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성 안토니의 유혹>은 이 가톨릭 성자의 투쟁을 묘사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창의적으로 못생긴 악마들을 그려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원본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보고 싶은데 말이죠. /흑 주황색, 녹색, 황색이 교묘히 어우러져 기괴한 느낌을 주는 배경, 저 멀리 이미 제물이 되어 나무처럼 굳어버린듯한 시체, 눈, 코, 입, 사타구니까지 기어들어오는 소름 끼치는 괴물들...... 아마도 성 안토니우스에게 닥친 유혹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지옥의 공포 속에서 한 여름의 산들바람처럼, 한 겨울의 훈풍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다가온 악마의 속삭임이었을 겁니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듣게될 속삭임들이 악마의 유혹인지 신의 음성인지, 엄청난 실수인지 올바른 결정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요? 이렇게 끊임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갈등을 하고,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걸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최선인 동시에 숙명인 걸까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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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췌장 2008/01/16 02: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가 보던 영화관에서도 순간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렸습니다. 카모디 부인에 대한 적대감은 누구나 다 똑같은 일인가봐요 :)
    전 마지막 장면이 지금까지 이어오던 영화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부정해버린 느낌이라 굉장히 싫었는데, 죽음에 대한 글귀와 그 장면을 연결시켜보면 또 다르게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ㅅ/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섬연라라 2008/01/16 22:45  address  modify / delete

      원작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좀 다르다고 하네요. 영화에서는 좀 더 강한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나봐요. 부작용이 좀 있더라도요. ^^;

  2. BlogIcon Stephan 2008/01/16 15:1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카모디 부인..소설에서도 짜증났는데-_-a 영화로 접하니 더욱더 짜증나더군요;

  3. BlogIcon smilehero 2008/01/16 21: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전 영화보고 글 읽으려고 잠시 미뤄뒀습니다 :)
    간만에 포스팅 보니 반가워 달려왔어요 ^^

  4. BlogIcon groovie 2008/01/17 08: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트랙백 타고 흘러왔어요~ 리뷰 잘 읽었어요... 에른스트의 그림과 밑에 니체의 말이 가슴을 콕 찌르네요...

    제가 봤을 때도 카모디 아줌니 죽을 때 박수가 터져나왔는데...ㅎㅎㅎ
    혹시 코엑스서 보셨나요?
    아니라면 박수 현상이 여기저기서 다 일어난 모양이네요 ^^ㅋ

  5. BlogIcon 阿 瑟 瀾 2008/01/17 08: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마지막에서, 잠에서 깨어나서 두리번거리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던 주인공의 아들... 의미심장했는데요.
    군인들의 수송차 위에서 자신의 아들을 껴안고 있던 짧은 머리의 여인, 그녀의 표정이 압권이었습니다.

    라라님의 포스팅을 보니 다시 생각나요.

    그나저나 그 여인 이름이 카모디 부인이었군요. ㅋㅋㅋ

    • BlogIcon 섬연라라 2008/01/17 11:22  address  modify / delete

      그 아줌마 첨에 애들 구하러 가야하는데 누구 같이 가 줄 사람 없냐고 한사람 한사람 지목하며 물어볼 때는 좀 황당했는데... 모성이 부성을 이겼다나 어쨌다나.

  6. BlogIcon rince 2008/01/20 23: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스포일러 경고가 있어서 읽지는 못했지만,
    이번주에 꼭 보려고 한답니다. ^^;

  7. BlogIcon 혜란 2008/01/21 14: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일 무서운건 역시 사람.
    음... 전 그 카모디 부인이 사망하실제 (-_-) 박수치는 사람들도 무서웠어요.
    짜증나는건 사실이었다만 '죽음'에 박수를 보낼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참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죠 :)
    영화에 집중하고, 그 영화를 함께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관찰하고.

    그게 굳이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들과 영화를 보는 맛 아니겠어요.

    • BlogIcon 섬연라라 2008/01/22 10:30  address  modify / delete

      맞아요.
      저는 남들보다 공감에 대한 욕구가 큰 편이에요. ㅎㅎ
      그래서 집에서 보는 것보다 극장 가서 보는 걸 더 좋아하는 걸까요. /흐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