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계>는 간만에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만들어 준 영화였습니다. 이안 감독의 명성과 양조위의 존재감, 베니스 영화제 수상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가 컸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리라는 기우를 말끔히 날려준 작품입니다.
작품 배경은 19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 일제 점령기 시절의 홍콩과 상해를 그리고 있습니다. 스토리의 두 축은 간단하게 친일파와 항일단체의 대립입니다. 주도면밀하며 경계심이 강한 친일파 장군 역으로 양조위가, 그런 양조위를 암살해야하는 임무를 가지고 미인계로 접근하는 역으로 신인배우 탕웨이가 열연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횡포에 시달린 역사를 가진 우리가 어렵지않게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을 그리고 있지만, 감독이 표현하고 있는 시대의 모습은 결코 흑백으로 깔끔하게 갈라놓을수 있는 선과 악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립투사로 칭송받아야 마땅한 항일단체가, 그저 개인적인 처지와 시대적 상황에 엇물려 돌아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만을 보여줄 때, 오히려 생존을 위해 지독한 고독을 감수하면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친일파 장군의 모습이 더욱 연민을 끌어낸다는 사실에 짐짓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혹독했던 시절에도 인간의 기본적이면서도 복잡다단한 욕망은 일촉즉발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내면 깊숙이 부글부글 끓고 있으며, 그런 욕망을 철저히 이용하려는 뱀의 유혹 또한 사방에 도사리고 있음을, 영화는 장장 세시간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게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굳이 도덕의 잣대가 아니더라도 욕망과 경계의 저울은 항상 우리 안에 있음을.
<색,계>를 보면서 줄곧 연상된 그림은 바로 에곤쉴레의 <Embrace>입니다.
제목은 Embrace, 포옹이지만 저는 제목을 보기 전에 이 그림을 보면서 좀 더 격한 고독이 느껴졌습니다. 에로티시즘과 고독은 결코 떨어뜨려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를 인식하는 첫 시발로서의 고독과 다른 존재를 갈망하는 욕망으로서의 에로티시즘은 묘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색(Lust)과 계(Caution) 사이에서 지독한 갈등과 충동을 겪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강렬한 첫인상 뒤에 스며드는 다정함에 대한 서글픈 갈망은 여주인공이 양조위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에서 여실히 보여집니다.
결국, 우리가 혼자임을 받아들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항상 타인에 대한 욕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그것은 그저 연약한 존재들이 꿈꾸는 따뜻한 포옹에 대한 지속적이고 끈질긴 무의식의 열망임을, 그녀의 노래에서, 그의 눈물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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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죽음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구원에 대해 사색했던 프랑스 사상사 조르주 바타유는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금기를 범하는 순간 우리는 고뇌를 느끼며, 고뇌와 함께 금기가 의식되고, 죄의식도 체험하게 된다.이러한 고뇌와 죄의식 끝에 우리는 위반을 완수하고 성공시킨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우리의 의식은 그 위반을 즐기기 위해 금기를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금기를 어기려는 충동과 금기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고뇌를 동시에 느낄 때 비로소 에로티시즘의 내적 체험은 가능한 것이다."
마치 이안 감독이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에곤쉴레가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글로 정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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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충동하여 의지를 거스르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해도, 우리에게는, 그리고 그들에게는 분명 선택의 시간이 닥치게 됩니다. 그것이 파국으로 치닫는 선택이라 할 지라도 그 순간 자신을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해 용단을 내려야하는 순간.
여인은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그를 구하기로 결심하지만, 살아남은 그는 결코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결코 잊혀지지 않는 영화의 엔딩에서 양조위가 보여준 표정은 이제 고독이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못한 지옥의 어느 한 지점처럼, 깊은 어둠이 느껴집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영원히 혼자일 것입니다. 마치 끝나지 않을 저주처럼 그의 영혼을 잠식해가겠죠.
마지막으로,
극장 안 여성분들의 탄성을 자아내던, 영화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ㅅ-
극장 안 여성분들의 탄성을 자아내던, 영화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ㅅ-
남재여모(男财女貌)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낼까 합니다. 후우.
